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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성지' 파주 ‘콩치노 콩크리트’..레전드 스피커로 감성 충전

콩치노 콩크리트는 24m 높이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빈티지 스피커 전용 공간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한쪽 벽을 차지한 두 대의 대형 스피커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나는 1930년대 미국 웨스턴일렉트릭의 ‘M2’, 다른 하나는 독일 클랑필름의 ‘유로노 주니어’다. 두 스피커 모두 20세기 초 극장과 공연장에서 사용되던 최고급 스피커로, 이곳에서는 클래식과 재즈를 번갈아 가며 들려준다. 선곡은 특정한 기준 없이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이날 오후에는 1978년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녹음한 그리그의 ‘페르 귄트’가 공간을 채웠다.
이곳을 만든 사람은 치과의사 오정수 원장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세종문화회관과 용산전자상가를 드나들며 고급 오디오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1980년대 후반, 막노동을 하며 모은 500만 원으로 영국 로저스의 스피커 ‘LS3/5A’를 중고로 구입하며 본격적인 컬렉션을 시작했다. 당시 서울 변두리의 작은 주택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었지만, 중고 스피커는 전원을 켜자마자 고장 나버렸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는 대신 더 좋은 스피커의 소리를 듣겠다는 열망을 키웠다. 최신 하이엔드 스피커도 접해봤지만, 결국 따뜻하고 편안한 소리를 내는 빈티지 스피커가 더 큰 매력을 느끼게 했다.

현재 콩치노 콩크리트의 중심이 된 두 대의 스피커를 들여온 것은 20여 년 전이다. 이 과정에서 독일 정부가 유로노 주니어를 한 달간 압류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많은 극장이 파괴되면서, 이 같은 스피커의 수량이 급감했고 독일에서는 이를 문화재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오 원장은 이 스피커를 여럿과 함께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40년 넘게 모아온 LP 앨범 1만여 장과 함께 콩치노 콩크리트가 탄생했다. 그는 “20세기 중반 제작된 음반들은 실제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공간의 규모에 맞춰 녹음된 것이라 넓은 공간에서 감상해야 제대로 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건물 설계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디자인한 민현준 홍익대 교수가 맡았다. 그는 음향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2층과 3층을 터서 층고를 9m까지 확보했다. 이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퍼지면서도 흩어지지 않는 최적의 높이로 설계된 것이다. 콘크리트 내벽 일부에는 불에 태운 송판을 붙였다가 떼어내 음각 무늬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난반사를 유도하여 소리가 공간에 머무를 수 있도록 했다. 창틀 역시 일반적인 알루미늄 대신 묵직한 주철을 사용해 소리의 진동감을 잡았다. 통창을 통해 임진강의 풍경을 담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오 원장은 “음악은 자연 속에서 들을 때 더 큰 감동을 준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데이트를 즐기는 20대 커플부터 브람스를 좋아하는 노신사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주 객석, 창가, 홀 중앙 등 위치에 따라 소리의 울림이 다르게 들리기 때문에 반복해서 방문하는 단골도 많다. 오 원장이 이곳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들었던 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다. 20세기 독일의 지휘 거장 푸르트뱅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1943년 녹음한 버전으로, 콩치노 콩크리트에서는 당대의 앰프를 사용해 원음에 가깝게 재현한다.
입장료는 2만 원이며, 수·목요일은 휴무다. 주말에는 오 원장이 직접 DJ로 나서 선곡을 맡는다. 최근에는 웨스턴일렉트릭 스피커에 마이크를 연결해 소프라노 김희정과 피아노 3중주 공연을 진행하는 실험적인 시도도 선보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카페가 없다. 그는 “여기는 음료를 마시며 대화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역사가 된 음악을 듣고, 음(音)의 세계를 인식하는 공간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공간의 본질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한마디다.
콩치노 콩크리트는 단순히 오래된 스피커를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거장들이 연주했던 시대의 소리를 복원하고, 현대에서도 그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음악 감상의 성지다. 거대한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음향을 따라가다 보면, 100년 전 거장들의 연주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콩치노 콩크리트는 단순한 청음실이 아니라 하나의 성소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