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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 통영에서의 이야기


2020년, 김탁환 소설가를 만나기 위해 전남 곡성으로 간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는 특별한 집필 요청을 했다. ‘비운의 천재’ 이중섭(1916~1956)의 경남 통영 시절에 대한 소설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김 작가는 4~5년 정도 기다릴 수 있냐고 물었고, 정 대표는 기꺼이 응답했다.

 

‘참 좋았더라(남해의봄날 출판)’는 김탁환의 32번째 장편소설로, ‘이중섭의 화양연화’를 다룬 작품이다. ‘황소’, ‘흰 소’, ‘달과 까마귀’, ‘부부’, ‘도원’ 등 그의 많은 명작이 통영에서 탄생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 중섭은 도쿄, 원산, 부산, 서귀포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배우자 이남덕과 두 아들 태현, 태성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남았다. 특히 1953년 11월부터 1954년 5월까지는 통영에서 집중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통영이 그의 걸작 탄생지로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통영에는 미술가 유강렬이 설립한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가 있었고, 중섭은 이곳을 중심으로 화가 전혁림, 박생강, 김용주, 시인 김춘수 등과 교류했다. 천석꾼의 맏손자 김용주는 특히 중섭을 아꼈다. 지인들의 지원과 예술적 자극 덕분에 중섭은 “그림 지옥”에 빠져들어 절정의 작품을 쏟아냈다.

 

소설의 가치는 이중섭의 예술가로서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잃어버린 고리’를 깊이 있게 되살려낸 데 있다. 화가가 통영에서 자연과 사람들의 배려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것처럼, 작가 또한 통영의 ‘자원’을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치밀한 취재는 통영 사람들의 애정과 역량 덕분이었으며, 자신의 생을 온전히 예술에 바친 한 사내를 긍휼과 사랑으로 재현한 것은 작가의 역량과 성취라 할 수 있다.

 

피란 생활로 인해 일상이 찢어졌던 이중섭이 통영에서 “진혼의 화양연화”를 이루었다는 김탁환의 평가는 이 지역이 걸작을 탄생시킨 고통과 기쁨의 장소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소설가가 “예술가로서 나는 어디까지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집필했듯, 중섭은 자신의 기량과 열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운명에 맞섰다. “전쟁, 이산, 외로움, 공산주의, 자본주의, 그 모든 적”에 맞서, 있는 힘을 다해 꿈틀거리는 이중섭의 소가 통영에서 태어났다. 

 

참 좋았더라-이중섭의 화양연화-, 312쪽, 김탁환 지음, 남해의봄날 펴냄, 1만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