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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값이 비싼 진짜 이유... 내년 무관세 시대 '한국 우유의 종말' 온다

 2025년이 시작되면서 국내 유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2026년부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우유가 무관세로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서 국내 유업계는 불과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국내 유업체들은 가격경쟁을 사실상 포기하고 제품 고급화와 다양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국내 우유 가격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우유(1리터 기준) 가격은 2.12달러로 전 세계 6위에 해당한다. 이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13위·1.89달러)나 일본(43위·1.41달러), 미국(73위·1.06달러) 등 주요 국가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비싼 우유 가격의 주된 원인은 원윳값이 높기 때문인데, 이는 사룟값이 원유 생산비에서 59.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낙농 구조상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가격 문제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은 점차 수입 멸균 우유로 눈을 돌리고 있다. 낙농진흥회와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주로 생산되는 흰 우유(백색·가공) 소비량은 1인당 38.2kg에서 30.9kg으로 감소했다. 반면 수입량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원유 생산량은 193만800t인 반면, 수입량(원유 환산)은 236만4000t으로 이미 국내 생산량을 넘어섰다.

 

특히 폴란드, 호주 등에서 수입되는 우유는 1리터당 가격이 1500~1600원으로 국내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까지는 주로 가정용 시장을 중심으로 수입 우유가 확대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B2B 시장까지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가형 카페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가격 경쟁력을 위해 수입산 우유 사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입산 멸균우유 판매·유통사들은 카페를 대상으로 6개월간 무상 공급이나 파격적인 할인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유업계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은 저출산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국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합계출산율이 0.70명으로 2040년까지 유지되면 유소년 인구가 2020년 632만 명에서 2040년 318만 명으로 줄고, 영유아 인구는 263만 명에서 130만 명으로 '반토막' 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인구 감소는 우유 소비의 주요 타깃인 어린이 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우유 소비량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식품산업 통계정보 '소매 POS'에 따르면 2020년 559억 원 수준이던 분유 매출은 지난해 301억 원으로 46.1%나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위협은 2026년부터 시작되는 FTA에 따른 관세 철폐다. 현재 미국산·유럽산 우유, 치즈 등에 대한 관세율은 11~13% 수준으로 매년 단계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2026년 이후에는 0%가 된다. 유제품 강국인 호주, 뉴질랜드의 무관세 적용 시기도 각각 2033년, 2034년으로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유업계에서는 이러한 관세 철폐가 국내 업계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외부적 위협에 더해 내부적으로도 유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가상승 속에서 유업체들은 물가상승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유 가격이 오르면 연관 물가가 함께 상승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식료품비 부담이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불만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료품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상위권으로, OECD 평균 대비 56%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유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저출산으로 우유 소비가 크게 줄었음에도 낙농가 생산원가를 반영해 오른 가격의, 과잉 생산된 물량을 무조건 사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요를 반영해서 원유를 사들일 수 없는 구조지만 이를 인지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며 "시장 상황·수요·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낙농가는 원윳값을 올려달라고만 한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유업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기 대응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전략은 흰 우유의 고급화다. 대표적으로 우유 섭취 후 배앓이 등 불편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당분해우유(락토프리)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9년 306억 원이던 락토프리 시장규모는 지난해 870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성장했다.

 

락토프리 시장을 선점하여 주도권을 쥔 기업은 매일유업이지만, 최근 다른 기업들도 속속 도전장을 내고 있다. 특히 업계 1위인 서울우유는 지난해 4월 프리미엄 흰 우유 'A2+ 우유'를 출시하며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A2+ 우유는 일반 우유에 포함된 A1, A2 단백질 가운데 A2만 함유한 우유로, 유당불내증이 있어도 소화가 잘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울우유는 2030년까지 모든 원유를 A2원유로 교체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업계는 '흰 우유 업그레이드' 외에도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유가공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성장세가 높은 디저트 시장 관련 제품을 출시하거나, 자사 제품을 활용한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나서는 등 외식·베이커리 등의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일례로 매일유업 자회사 엠즈씨드는 폴바셋 등 카페와 편의점에 디저트를 납품하는 B2B 중심 사업을 해왔으나, 지난해 프리미엄 식빵 브랜드 '밀도'를 인수하며 B2C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또한 남아도는 원유를 활용해 치즈·요거트·컵 커피 등 다양한 고수익 제품 출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비자 입맛이 고급화하면서 고급 치즈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대응하고 있으며, 컵 커피 출시 등을 통해 MZ 세대가 자주 찾는 편의점 채널을 공략하고 있다.

 

다양한 소비자층을 겨냥한 제품군 다변화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매일유업은 2018년 성인 영양식인 '셀렉스'를 출시한 데 이어 2021년 건강기능식품 등을 생산하는 자회사 매일헬스뉴트리션을 설립했다. 본사 내부에서는 메디컬푸드사업부가 환자식, 고령친화식 제품 생산을 맡는 등의 방식으로 매출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시장 트렌드에 맞는 기능성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2021년 건기식 발효유 제품인 '이너케어'를 출시한 이후 2022년 고함량 완전 단백질 음료인 '단백질음료 테이크핏 맥스', 2023년 단백질분말 '테이크핏 케어'를 선보였으며, 지난해에는 부스터 단백질 음료인 '테이크핏 프로'까지 잇따라 출시했다.

 

서울우유는 '가공유 시장'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B2C 사업에서는 흰 우유보다 가공유 수요가 훨씬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간편식(HMR) 제품 개발을 통해서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서울우유 관계자는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시장 반응이 꽤 좋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유업계는 2026년 FTA 무관세 시대를 앞두고 가격경쟁력에서는 이미 밀리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제품의 고급화와 다양화를 통해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소비 감소와 값싼 수입산 우유의 공세 속에서 국내 유업계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