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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주도’ 트럼프 "먼저 합의하면 유리"..한국, 다음 주 협상 시작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현지시간 14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무역 협상이 다음 주에 시작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상대국들이 가져올 ‘최선의 제안’에 따라 협상 속도가 결정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 영국, 호주, 인도, 일본을 90일간의 상호관세 유예기간 동안 협상 최우선 대상국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고,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에서도 보도됐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최근 중국의 보복 조치, 증시 불안, 국채 수익률 상승 등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 전략이 주춤한 데 따른 대안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합의가 쉬운 우방국들과의 협상을 통해 자신의 무역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성과를 서둘러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을 향한 미국의 협상 요구가 본격화됨에 따라, 양국 간 접촉이 이제 탐색전을 넘어 실질적인 협상 단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 측에서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르면 내주 미국을 방문해 협상에 직접 나설 예정이다. 안 장관은 경제와 안보를 포괄한 ‘원스톱 쇼핑’ 방식의 포괄적 협상 전략을 구상하고 있으며, 미국에 제시할 협상 패키지에는 무역 균형 개선과 비관세 장벽 해소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미국산 가스, 원유, 농산물 등의 수입 확대와 더불어, 자동차·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식의 수출 대체 전략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임기 중 실질적인 무역수지 개선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또한 미국이 FTA 체결국인 한국에 상호 관세 부과 명분으로 삼고 있는 비관세 장벽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해소 노력을 설명할 예정이다.
특히 최근 농촌진흥청이 미국 심플롯사의 유전자변형 감자(LMO)에 대해 재배 환경 위해성 심사에서 ‘적합’ 판정을 내린 것은, 미국과의 무역 환경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으로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문제 역시 정부가 전향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와 조선산업 협력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비록 알래스카 LNG가 상업화되더라도 2030년 이후가 되어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관심사를 반영한다면, 한국의 참여가 협상에서 유효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15일 강연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대미 관세 협상 패키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협상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안보 사안까지 포함시키는 경향을 감안해, 이 역시 포괄적인 논의 안에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정부는 현재 범정부 차원의 협의체를 가동해 산업·외교·국방 부처가 공동으로 미국에 제시할 안건을 조율하고 있다. 각 부처는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는 사안을 취합해, 내주 미국을 방문하는 안 장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반도체, 스마트폰 등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했다가 장기적으로 국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 등 다른 주요 우방국들과 보조를 맞추며 협상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는 만큼 조급하게 협상에 임했다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기면 곤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의 핵심은 타이밍과 유연한 대처임을 강조하며, “상대적으로 절박한 쪽이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협상은 국내 정치적으로도 미묘한 시점에 이뤄지고 있다. 오는 6월 3일 차기 대선을 앞두고, 현재는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 기반을 어느 정도까지 마련해 둘 것인지, 그리고 이후 중요한 결정은 차기 정부로 넘길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협상의 큰 틀은 현 정부가 마련하되, 민감하고 정교한 부분은 차기 정부가 마무리하는 방식이 적절할 수 있다”며 “미국 측이 이번 협상이 정권이 바뀌어도 유효하다는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 여야의 초당적 협력과 협상대표에 대한 전폭적인 권한 부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